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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Weekend]이만교 "잘못된 법 두면, 우리 모두 괴물된다"

입력 2019.10.18. 18:52
신효령 기자구독
네번째 장편소설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 출간
소설가 이만교 ⓒ이만교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소설은 허구의 세계지만, 시대를 외면한 글은 설 자리가 없다. 작가는 항상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열고, 남과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만교(52)는 혼란스러운 사회 현실을 명쾌하게 짚는데 일가견이 있는 작가다. 최근 펴낸 네번째 장편소설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문학동네)는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가감없이 들춰냈다.

2009년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회적 위치, 이해관계에 따라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도시재개발 현장의 모순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 작가는 "소설가는 사회 문제나 모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왜 이런 비극이 왜 일어났나 싶어서 주범이 누구인지 쫓았다. 최종적으로 잘못한 것은 법이었다. 잘못된 법을 두고 있으면 우리 모두 괴물이 된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한기씨'가 왜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를 잃어야 했는지를 짚었다. 안타까운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고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날의 멈춤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그날에 대한 기억을 애써 외면함으로써 자신의 것을 보전하는 데 급급한 것은 아닌지 날카롭게 되묻는다.

이 작가는 "용산 참사가 일어났을 때 글을 쓰는 사람들을 통해서 조의를 표했다"며 "일반 시민으로서의 행동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피해자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유가족을 돕기 위해 '작가선언69'라는 모임을 자발적으로 갖게 됐다.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돕는 일을 일주일 정도 했다"고 회상했다.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용산참사로 사망한 이상림 할아버지를 알게 됐다. 예순이 넘은 분인데, 새벽 기도를 다니셨다. 굉장히 선량한 시민이었다. 이상림 할아버지를 위한 시 낭송을 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났는데도 할아버지가 계속 생각났다. 그의 아들 이충현(전 용산 철거민 대책위원장)씨를 만났는데 안타까웠다. 사회에서 소외당한 슬픔이 느껴졌다. 희생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나보다 더 멋있게 살더라. 굉장히 열린 마음으로 사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삶의 편린을 풀어냈다. 소설에는 한기씨를 회고하는 인터뷰이 66명이 등장한다. 재개발 시행으로 세입자들은 소중히 일궈온 터전을 헐값에 넘겨야 할 상황에 처했다. 용역들은 온갖 부당한 방법으로 철거민들을 괴롭힌다. 용역들 뒤에는 경비업체, 경비업체 뒤에는 정비업체가 있고, 이들 뒤에는 재벌 시공사가 버티고 있다. 거대 권력의 연쇄작용은 사회적 약자인 개인들에게 크나큰 폭력이다.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과 맞닿아 있다.

이 작가는 "현실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관련 자료를 찾고 사람들을 인터뷰했다"며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구구절절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TV를 못 보게 됐다는 식당 아주머니도 있었다. '평생 헛것을 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손을 떨면서 말씀하시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소설을 쓰고 나면 얼굴이 빨개졌다. 많이 속상했고 화가 났다. 그러나 이 이야기만 쓰면 르포와 다를 게 없었다. 용산 참사가 어떤 일이었는지를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각자의 사연과 아픔이 촘촘히 그려지지만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진실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려진 것이라며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다. "용산 참사 사건에는 여러 사회 문제와 모순이 얽혀져 있다. 희생자들이 사회적 약자이자 피해자인데, 생각이 열려있었다. 나보다 더 멋있게 살더라. 이 분들이 갖고 있는 슬픔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배울 것은 없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단편소설 '투레질'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 작가는 "글쓰기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삶이 됐다"며 "내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이다. 14년째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함께 하면서 활력을 느낀다"고 돌아봤다.

한서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예리한 관찰력과 섬세한 필치로 우리 사회의 변천사를 담아냈다. 첫 장편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한국 사회의 속물성을 꼬집었다. '머꼬네 집에 놀러올래'(2001)에서는 IMF로 파탄에 이른 가족 이야기,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2003)는 문명의 이기에 변해가는 산골 아이들의 삶을 다뤘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2000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다. "원래 소설의 제목은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며 "아내가 더 센 제목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바꿨다. 이 말은 사실 아줌마나 아저씨가 일상적으로 했던 이야기다. 결혼 제도나 연애 풍속도에 초점을 맞췄던 게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들어오면서 인간관계가 변해가는 양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결혼할 당시만에도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세상을 지배했다"고 설명했다. "연애보다는 소개팅을 해서 결혼하는 사람이 많았고, 30살이 넘은 사람에게 노총각이나 노처녀 딱지가 붙었다. 그런데 후배들을 보니 나와는 삶의 방식이 달랐다. 개인주의화되면서 결혼적령기라는 것이 없어졌다. 연애도 꼭 결혼을 목적으로 두지 않았다. 개인의 철학이나 취향이 중요해졌다. 우리 때는 가족을 위해 절약하자는 주의였는데, 이 친구들은 내 삶을 위해 물건을 소비해야 겠다는 생각이 컸다."

청춘들의 많은 공감을 자아내면서 영화로 제작됐다. "영화 개봉 전에 시사회 티켓 20장을 받았다. 그런데 시사회날이 결혼기념일이었다. 하하. 관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행복했다."

이 작가는 현재 우리 사회가 긴 소설을 읽을 만큼 여유가 없다고 진단한다. "다들 바쁘다.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더 짧게, 자유분방하게 쓰려고 한다. 틈나는대로 조선족과 탈북자를 인터뷰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소설에 등장시키고 싶다. 글쓰기는 나에게 매우 소중한 일이다.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작품을 많이 쓰고 싶다."

snow@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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