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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성 강자, 여성 약자'라는 일방적 등식 깨질 때도 됐다

입력 2019.10.29. 14:23 수정 2019.10.29. 15:20
김승용 기자구독
조선희 법조칼럼 이광원 법률사무소 변호사

직업상 여러 사건을 접하면서 남녀간 세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남녀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법적인 잣대만으로 보기에는 난감할 때가 많다.

여성쪽은 "강간"이라고 주장하고, 남성은 "합의된 관계" 이른바 화간을 주장할 경우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는 쉽지 않다. 남녀간의 은밀한 관계를 수사기관이 고소자의 진술만으로 조사과정에서 남성을 일방적 가해자로 취급하는 위험한 경우도 직업상 쉽지 않게 목격한다.

필자는 준강간죄로 고소 당한 K씨 사건을 담당해 무죄판결을 이끌어 냈다. 의뢰인 K씨는 절교선언을 했었던 여자 친구가 먼저 만나자고 해서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신 후 본인의 차안에서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성이 태도를 바꿔 "당장 병원에 가자"고 요구하는 황당한 사건과 마주했다. K씨는 여자 친구와 술을 마셨기에 음주운전 단속에 걸릴 것이 걱정돼 병원에 가기를 거절했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그 여성은 "병원에 함께 가지 않았다"는 것에 앙심을 품고 "만취 상태서 K씨로부터 당했다"고 덜컥 고소부터 한 것이다. 초동수사를 맡은 경찰관은 사건 현장의 CCTV같은 단서도 없이 K씨를 준 강간자로 단정한 채 다른 부서로 이동해버렸다. 검사는 "성범죄 특성상 여성피해자 보호가 우선이다"며 고소인 여성을 두둔하기 바빴다. 그때부터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남성 K씨는 가시밭 같은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K씨는 빨리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 자백할테니 집행유예가 나오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변호인으로서 당장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자백을 했다가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K씨를 억울하게 버려둘수 없었다. 평생 성범죄전과자라는 낙인도 K씨에게는 가혹한 것이었다.

사건의 반전은 법정에서 일기 시작했다. 법정에서 고소 내용이 사실과 다름이 입증되기 시작했다. 고소인의 진술을 통해 "K씨가 억지로 술을 먹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 고소인이 경비원의 모자 색깔까지 뚜렷이 기억한 사실, 헤어진 직후 평소 외우고 있던 K씨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했던 사실"등 고소인이 심신상실상태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술집 종업원의 용기 있는 목격자 진술도 결정타였다. 종업원이 "고소인이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지 않았고 멀쩡한 상태로 술집을 나갔다"라고 진술한 것이 스모킹 건으로 작용했다. 나아가 경비원이 "당시 남녀간에 데이트 하는 것으로 볼만한 정황이 있었다"라고 진술한 것도 사건 반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결국 재판부는 고소인과 K씨의 일은 정당한 남녀 관계로 "일부 기억이 없는 것은 소위 필름 끊김 현상에 기인한 것으로 심신상실로 볼수 없다"며 K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기나긴 악몽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남자는 강자, 여자는 약자"라는 일반적 등식을 깨는 판결이었다. 그래도 이 사건은 용감한 증인들이 있어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세태가 변하면서 남자가 강자이니 무조건 가해자겠지 라는 선입견은 위험한 시각이다. 열 명의 범죄자를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남녀관계가 큰 변화를 보이면서 여성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등식도 변하고 있다. 물론 우리사회가 여전히 여성에게 불리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K씨 사건처럼 수사기관이 "남성 가해자, 여성 피해자"라는 일방적 선입견을 가지고 남녀사건을 대하다 보면 오히려 억울한 남성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고소인의 말에 치중되어 예단을 갖고 객관적인 증거수집에 소홀할 때, 억울한 사법절차의 피해자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도 이 사건의 교훈이다. 변화하는 남녀 시대에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때다. 이미 사회는 변하는데 수사기관이 전형적인 남녀관계론에 얽매여 구체적 사건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지 자문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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