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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자들의 송년회 교학상장(敎學相長)

입력 2019.11.25. 13:50 수정 2019.11.25. 13:51
김승용 기자구독
정화희 교단칼럼 운리중학교 수석교사

꿈을 꾸었다. 세찬 가을바람이 나뭇잎과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 그러나 늦가을 추억만큼은 쓸어 담지 못했다. 시간은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었다. 그리고 중년 제자들과의 시간여행은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다.

30년 전 학교 시설은 부족했으며 교육과정은 단순했다. 경험 없는 교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고의 환경은 교사들의 열정이라 믿었다. 제자들과 함께 그야말로 불철주야 살과 뼈를 깎았다. 그들을 일컫는 수식어는 다양했다. 때순이, 목욕할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깔끄막, 많은 학교들이 그러하듯 깔끄막에 있어 체력 단련이 되었단다. 무다리, 아침 저녁 오르내리는 덕에 튼튼한 다리를 만들고. 아침 7시 많은 학생들이 지각하지 않기 위해 뛰며 어김없이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토요일, 일요일 할 것 없이 그렇게 힘든 생활 속에서도 우정이라는 주머니를 한 칸씩 채워 나갔다. 더구나 시골 자취생들은 선생님들과의 시간이 전부가 되었다. 이제 그 모든 것은 추억창고에 켜켜이 쌓여있다. 학교는 다를지라도 중년들의 학창시절은 거의 비슷했으리라.

가을 주말 앞산에 오를 때면 어린 아이들과 산책 나온 가족들을 간혹 만난다. 아내는 말한다. 우린 저래 보질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그렇게 젊은 날의 열정은 모두 학교 제자들을 향해 있었다. 일요일도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왜냐구? 그냥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교사이니까. 요즘의 교사상에 비하면 이해가 안 되는 대목도 있을 것이다. 이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다. 그러나 그 것, 어떤 상황에서도 제자들을 위해 좀 더 헌신하고 애쓰고자 하는 마음은 같으리라 믿는다.

어느 노교사는 우리들의 가르침이 어설펐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서툴렀던 지난 날 사과 아닌 사과를 한다. 더구나 어떤 면에서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했는지도 모른다고. 제자들은 크게 손사래를 친다. 당신들의 진정과 희생이 우리들의 뿌리가 되었다고, 이렇게 잘 성장하여서 당신들처럼 묵묵히 누군가를 위하여 헌신하고 있다고, 이 이상의 가르침이 어디 있냐며 환호성을 울린다.

그렇다. 교사는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제자들과의 만남과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색깔로 채워가는 것이다. 젊은 날에는 민망하게도 인기있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누구나 바라보는 꽃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연륜은 이제 꽃씨가 되고 싶은 소망을 담는다. 꽃은 제자들의 몫이다. 그들의 향기가 널리 퍼지도록 밝은 햇살로 안아줄 뿐이다. 공간은 떠나 있지만 제자들의 안정과 성취를 묵묵히 응원하고 뒤에서 밀어주는 교사가 참교사라는 깨달음을 갖는다.

변호사 동문들 앞에서 자신은 복지사라고, 아니 뷰티 강사라고 모두가 '사'자라 주장하며 웃음을 건네주는 제자들의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다. 스승들 앞에서 제자들의 완장(?)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대들이 어디에 있든지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억해 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다. 스승이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해도 그대들 기억 속에 있다는 것은 감동의 회오리다.

'퀘렌시아(Querencia)'라는 스페인어가 있다. 요즘 건축학에서 화두가 되는 단어이다. 원래 뜻은 투우 경기에서 지친 소가 투우사에게 돌격하기 위해 마지막 숨을 고르며 자신을 채우는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힘든 일상 속에서 지치고 피로할 때 자신을 채우는 학창시절로의 회귀는 모든 이에게 안식을 불어넣는다. '보여지는 나'에서 벗어나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한 학창시절 친구가, 은사님이 계신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은사님들을 기억하고 어쩌다가는 연락하여 안부를 묻는 이 땅의 모든 제자님들에게 감사를, 묵묵히 제자들을 위하여 헌신하시는 모든 스승님들께 보람과 존경을 드린다. 나아가 우리들의 교실과 학교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누군가의 '퀘렌시아'가 될 수 있도록 스승과 제자 모두가 서로를 좀 더 채워가는, 인간적인 만남이 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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