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바로가기 열기

뉴스룸 동영상

서구청

조선 최고의 시인, 눌재 박상이 태어나고 자란 [절골 마을]

입력 2019.10.16. 09:48

전국 어디에 가나 [절골 마을]을 만날 수 있는데요 광주광역시 서구에도 [절골 마을]이 있다는데...알고 계시나요!?

바로 서구 서창동 관내 최남단부인 송학산 북쪽 기슭의 평지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사동(寺洞)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지금은 없어졌지만 마을 앞에 연꽃을 가득 담은 저수지지 있어서 꽃향기가 마을 안까지 덮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동(寺洞)이나 절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산에서 이 마을 안쪽으로 내려오는 깊숙한 골짜기에 작은 암자가 하나 있어서 <절이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하여 절골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 입구에는 <충주박씨천>이라 새겨진 바위를 만나 볼 수 있는데요.

이는 [절골 마을]이 충주 박 씨의 세거터(세거지) -(한 고장에 대대로 살아온 터전)임을 알리기 위해 1918년 무오년 6월에 박상의 12대손인 성주가 마을 입구 돌비에 내용을 새겼다고 해요!

그리고 이곳 [절골 마을]에는 조선시대 아주 유명한 학자가 살았는데요. 눌재(訥齋) 박상(朴祥, 1473-1530) 선생입니다.

조선의 왕 가운데 가장 공부를 많이 했다던 정조대왕은 「조선최고의 시인은 박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눌재 선생은 1천200여편의 한시를 남겼을 만큼 선생의 시에서는  가족들에 대한 사랑, 자연의 아름다움 묘사, 세상의 부끄러운 일들을 꾸짖음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눌재 선생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데요. ​하지만 선생은 글만 잘 쓰던 분이 아니었습니다. 

눌재 박상 부부의 묘와 묘비문-문화원연합회자료 목숨을 걸고 연산군의 잘못을 지적했고 연산군의 힘을 이용하여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엄벌에 처했던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해요!

한마디로 삶과 글이 동일했던 분이 아닐련지. 그래서 가진 것을 아부의 수단으로, 불의한 권력에 침묵하며 부귀를 누리는, 그런 세태에 귀감이 되는분 입니다^^

지금 이곳은  <절골 마을 도랑 살리기 사업>을 추진 하면서 물 중심의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해서 도랑정비, 수변공간정비, 식생조성, 환경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고 해요~

조선 최고의 시인이자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인 눌재 박상 선생이 살았던  서창동 절골마을이 아름답게 보존되길 바래봅니다^^

​이상 광주 서구 SNS 서포터스였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srb7@hanmail.net전화 062-510-115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사랑방미디어'

도시樂 주요뉴스
댓글0
0/300

랭킹뉴스더보기

전체보기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