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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마와 청포도 사이

입력 2020.07.13. 15:32 수정 2020.07.13. 19:33
김승용 기자구독
김현주 교단칼럼 광주인성고 교사

포도알 같은 장맛비가 내리는 아침, 낯선 전화번호로 휴대전화가 울렸다. 주차해둔 차의 창문이 열려 있다는 연락이었다. 누군지 모를 이웃의 배려에 감사하며 서둘러 차에 가보니 뒷좌석 창문이 마치 하늘을 향해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그 어떤 생명체처럼 보였다.

밤새 내린 비에 차 안은 온통 여름비의 비릿함에 젖어 있었다. 낭패였다.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옮겨 대충 차 안을 걸레질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비는 지칠 줄 모르고 내렸다. 문득 윤흥길 작가의 '장마'를 읽던 수업 시간이 떠올랐다.

교과서에 실린 글을 읽다 보면 가끔 중단편 소설들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소설들은 일부분만 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나머지 내용은 자습서나 참고서를 이용하여 줄거리를 찾아보거나 교사의 설명에 의존하여 작품을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교과서를 만드는 관계자들에게 요청하고 싶은 것은 가급적 작품 전문을 실어 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학생들이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일부분만을 읽는 것으로 그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라고 하는 것은 어떤 면으로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일이다.

학생들에게 전문을 읽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장마' 전문을 구하여 두 시간에 걸쳐 읽어 갔다. 작품의 시작부터 내리는 장맛비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등장 인물들이 겪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장마를 배경으로 전개하고 있던 작품은 학생들에게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역사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작품을 읽어가면서 궁금한 점을 스스로 찾아보고 메모지에 제시하면 학급의 친구들이 서로의 물음들을 살펴보고 그 중 가장 궁금한 점들을 골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모둠 활동이 어려워 대신한 활동이었다. 학생들의 활동이 마무리될 무렵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삶에서 장마는 언제인지. 아이들은 코로나를 이야기하기도 했고 지금 고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장마가 끝나듯 이 코로나19 전염의 시기가 끝나길 바란다는 학생들의 이야기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광주지역 코로나19의 확산세는 올해 학기 초 보이던 것보다 더욱 빠르게 진행되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의 교실은 거리두기가 쉽지 않다. 과거 자연스럽던 행동들이 요즘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고교 시절을 이제 시작한 학생들이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장난도 치며 관계를 형성하던 일이 주의를 요하는 일이 되었고 아침마다 등교 전에 학생 자가진단을 챙기는 일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한 마디를 더 하는 일이 되었고 코로나19와 벌이는 침묵의 점심 시간은 연장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종례 때면 반복되는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즐겁지 못한 후크송이 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전국 단위 시험 일정을 지켜내려던 교육관련 부처의 모습은 묘한 서글픔이다. 코로나19가 주는 공포보다 시험은 더 무서워 보인다. 코로나19와 싸우고 입시와 성적과의 싸움은 이 장마가 끝나도 어쩌면 계속될 것이다.

대부분이 코로나 이전의 시절과 생활로 돌아 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교육은 그 방식이 원격 수업으로 표현될 뿐 방향과 내용이 코로나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 우리 교육은 어떻게 가야 하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여기저기 코로나 이후 사회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목소리는 많은데 이를 하나의 장으로 모아 보는 시간과 공간은 아직 부족하다.

이제 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장마는 해마다 찾아 오며, 어쩌면 코로나도 다시 장마처럼 해마다 찾아들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복하지 말아야 경험들을 교훈으로 삼으며 내년 장마를 맞이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루한 장마와 청포도가 익어간다는 칠월의 사이 어디쯤에서 우리는 어디로 발을 옮기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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