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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갑과 을의 관계, 홀드 업!

입력 2020.08.03. 10:26 수정 2020.08.03. 18:56
김옥경 기자구독
류승원 경제인의창 광주·전남콘크리트조합 이사장
류승원 광주전남콘크리트조합 이사장

역대급 폭염이 예상되었던 올 여름이 길어진 장마와 폭우로 인해 오히려 선선한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지역적 집중호우에 의해 안타깝게도 수많은 수재민과 사상자가 생기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천재니 인재니 갑론을박이 계속되며 그 아픔을 증폭시키고 있다.

흔히 사주를 볼 때 태어난 연월일시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로 구성된다. 천간은 그 속하는 수가 열개(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이기에 십간이라고 하며, 지지는 우리가 흔히 띠를 말할 때 쓰는 십이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말한다.

천간과 지지를 조합하면 60개가 되고, 그 첫째가 갑과 자이기 때문에 육십갑자라고 한다. 간지는 각각 양과 음을 의미하고 그 안에서도 따로 양과 음을 배정하고 있다. 또한 그 안에 오행(화·토·금·수·목)을 포함시키고 조합해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다.

갑을은 불특정 주체를 순서대로 나열할 때 위에서 기술한 십간을 사용하면서 생긴 말이다. 보통 계약서에서 계약당사자들을 갑과 을로 표현해 수평적 관계를 가리키며 사용한 용어지만, 몇 년 사이에 '갑질'이라는 신조어의 등장으로 최근 관이나 기업, 대학 등에서는 '갑을' 대신에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분위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첫째, 으뜸'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 '갑'에 특정 행동을 폄하하는 '~질'을 붙여 생겨난 신조어가 본래 의미를 퇴색시키다 보니 생긴 현상임에는 분명하지만, 계약서상에서 갑을이라는 단어만을 바꾼다고 해서 본질적 프레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갑질'이 대기업 임원의 기내 승무원 폭행사건, 땅콩회항으로 불린 모 항공사의 이륙지연사건, 백화점 직원의 주차장 굴욕사건, 지자체의원의 해당지역 공무원 폭행사건, 아파트 입주자와 관리인과 관계된 사건 등을 시작으로 한국사회의 수직적, 수평적 관계를 나타내는 극단적 표현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사실이나, 실상 그러한 구조가 비단 국내만의, 최근만의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신분제도나 계급이 존재하는 것은 인류의 기원에서부터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완전히 해결한 나라나 조직은 지구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그것이 법이나 제도 등으로 통제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국제적 관계에 있어서 일본, 중국, 미국의 소재와 무역, 방위비 관련의 행태는 분명 '국가 간의 갑질'이고, 지면 관계상 사건들을 일일이 나열 할 수는 없지만, 현재 이슈화 되고 있는 여러 국내 정치문제, 기관간의 문제, 지자체장과 지자체 내부의 문제는 '정치적 조직 내부의 갑질'이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 등을 시작으로 직장 내부의 문제는 '경제적 조직 내부의 갑질'이다. 사회적 관계에서의 문제, 학교 조직 내부의 문제, 심지어는 가족 내부의 문제까지도 뉴스를 통해 알 수 있듯 그 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올리버 윌리엄슨교수가 거론해 경제학에서 수많은 인용의 대상이 되는 '홀드업 문제(hold-up problem)'라는 것이 있다. 홀드업은 말 그대로'손들어! 꼼짝마!'라는 의미이다. 양자 간의 관계에 있어서 처음에 적극적으로 행동하던 쪽이 점점 더 불리해져 결국 상대방에게 인질로 붙잡힌다는 의미로,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를 설명할 때 이 이론을 주로 사용한다.

다시 말하면 두 집단이 상호협력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쪽의 협상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상호협력을 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두 집단의 이익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질'을 하게 되면 '갑질'을 당한 을뿐만이 아니라 갑 역시 손해를 본다'는 말이다.

실제로 집단을 이룬 상대적 약자(을)에 의해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조직이 정당한 행사를 방해받고 곤경에 빠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때 강한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요즘처럼 모두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누가 갑이고 을인지 분류하고 다투는 행위는 그 자체가 무의미한 소모전일 뿐이다. 오직 법만을 최우선시하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회복을 통한 협업만이 차별 없는 사회를 추구하기 위한 최적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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