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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복구다' 전쟁터 속 구슬땀 흘리는 구례

입력 2020.08.10. 18:22 수정 2020.08.10. 18:23
김성희 기자구독
완전 침수됐던 구례 가보니
5일장, 점차 제 모습 찾아가
이재민들도 “견디자” 다짐
노인 많은 시골동네는 답답
정상화까지 한 달 이상 예상
서시천 제방이 무너져 피해를 입은 10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에 위치한 구례오일장의 모습

5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며 섬진강이 범람하고, 지류인 서시천 제방이 무너지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구례 곳곳은 물이 빠진 뒤 전쟁 폐허 같은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액만 최소 568억원. 읍시가지 전체가 물에 잠겼던 탓에 멀쩡한 것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지역 공무원과 경찰, 소방관, 군인, 자원봉사자 등은 물론 인근 시군과 전남도, 전국에서 모여든 손길 덕에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보였다. 덤프·펌프·살수차 등 장비 수십 대가 동원돼 피해지역 곳곳에서 상품·집기 등을 정리·세척했다. 또 수도·전기 ·가스 등 원상복구에 구슬땀을 흘렸다. 완전 정상화까지 한 달 이상 소요 될 것으로 예상지만 군민들은 "그래도 희망을 갖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도 살아야" 복구 속도나는 5일장

"시장 전체가 공황상태야. 전쟁터나 다름없어. 그래도 뭐부터 손대야 할 지 막막했던 어제보단 나아. 사람 죽으라는 법 있어? 살 길 생기겠지."

구례오일장 피해 복구 작업을 도우러 가는 자원봉사자들

기록적인 폭우로 쑥대밭이 된 구례군 구례읍 오일장은 10일 오전 복구 작업에 속도를 내며 분주한 모습이었다.

157개 점포가 일제히 복구작업을 시작하면서 오일장 도로 곳곳은 산처럼 쌓인 음식물쓰레기와 침수된 가재도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태풍 '장미'가 북상하면서 하늘에서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은채 흙과 오물로 범벅된 가게를 치우는 데 열을 올렸다. '드르륵 드르륵' 포크레인이 굉음을 내며 냉장고, 장롱 등 쓰레기를 트럭에 옮겨 담았다. 전남의용소방대원 700여명 등 자원봉사자들도 복구작업에 힘을 보탰다.

구례읍 구례여중에 마련된 대피소 모습.

상수도사업소가 침수되면서 수돗물이 끊겨 복구작업에 애를 먹었지만, 시간대별 제한 급수와 소방차를 통한 용수 보급 등 임시조치가 취해졌다.

시장에서 4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정민국씨도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10분 만에 2m 높이의 천장까지 물이 들이찼던 가게 내부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씨는 "복구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수돗물이다. 흙부터 씻어내야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11월께나 돼야 정상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적막한 대피소 "집에는 언제쯤 갈까"

구례오일장 피해 복구 작업을 돕는 공무원들

10일 오전 찾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 구례여중 강당에 마련된 대피소는 적막했다. 주택 침수로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 80여명이 머물고 있었지만 대부분 텐트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몇몇은 의자에 앉아 휴대폰으로 날씨 정보를 확인하며 조용히 한숨 짓고 있었다.

대피소 안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친구들끼리 종일 놀 수 있어 신난 어린 아이들 뿐. 어른들 걱정을 모르는 듯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과자를 나눠먹고, 장난을 치며 웃었다.

수마가 이들의 삶의 터전을 덮친지 3일째. 이재민들은 흙투성이가 된 집과 수습할 일을 생각하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상수도 공급 중단으로 구례지역 10개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는 1천여명의 이재민들의 대피소 생활은 길어질 전망이다.

구례 마산면 광평마을 한 주민이 물에 잠겼던 시설하우스에서 침수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노모와 아들과 함께 몸만 피해 나왔다는 구례군 봉서리 주민 A(70)씨는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사라져 웃음만 나온다"면서도 "꿋꿋이 이겨내고 버티다 보면 살길이 생길거라고 믿는다" 며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전정호(66)씨는 "대피소 생활은 물이 나오지 않는 것 빼곤 크게 어려움 없다. 태풍 때문에 악몽이 되풀이될까 걱정이긴 하다"고 우려했다.

대피소에는 고등학생 자원봉사자 2명이 긴급구호물품 배급 등 이재민을 돕고 있었다. B(18)양은 "군청에서 보낸 재난문자를 통해 자원봉사모집 사실을 알고 지원했다.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원래의 삶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노인들만 있는데" 신음중인 시골마을

"지금도 몸이 벌벌 떨려. 집이 다 잠겨서 장롱이고 뭐고 다 못쓰게 되부렀어. 경기도 사는 자식들이 와서 간신히 세간살이만 끄집어 냈어. 곰팡이 슬기 전에 집도 고치고 해야하는 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되나 싶어 막막혀."

팔십 평생 이런 물난리는 처음 겪는다는 구례 마산면 광평마을 주민 엄인섭(82)씨는 순식간에 마을이 물에 잠기던 그날 그 순간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10일 찾은 구례 마산면 광평리 광평·냉천마을은 섬진강·서시천 범람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구례읍 일대에 구호인력이 집중되면서 면 단위 마을은 손도 못 쓰는 상황이었다.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데다 수돗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고령의 노인들 몇몇은 흙 범벅된 마당을 쓸고, 손걸레로 살림을 닦았지만 금세 힘에 부쳐 포기해야 했다.

5분 거리의 냉천마을도 피해가 심각하기는 마찬가지. 주변 하우스 기름통들이 침수돼 집 전체가 기름 범벅이었다. 주민 안정자(56)씨는 "구호물품도, 구호인력도 없을뿐더러 피해 현장 한 번 안 와보는 면사무소에 분통이 터진다. 물이 집 2층까지 찼다. 천장에도 온통 기름인 상황이다"며 "오죽하면 남원이랑 광주에서 사는 친구들이 달려왔다"고 말했다.

최석환 광평마을 이장은 "마을 3분의 1이 침수됐지만 노인들이 많고 일손이 턱 없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군청에 연락해보니 내일(11일)이나 돼야 사람을 보내주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성희기자 pleasure@srb.co.kr·구례=오인석기자 gunguck@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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