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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품 이상의 가치 '신용'

입력 2020.09.24. 14:03 수정 2020.09.28. 18:56
김옥경 기자구독
이진국 경제인의창 ㈜에덴뷰 대표·경영학박사
이진국 ㈜에덴뷰 대표/경영학박사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짐을 나르고 주로 농사에 쓰이는 소달구지와 군량미 등을 나르는 병사용 마차가 대표적인 운송수단이었다. 소 등위에 나무 하나를 올려놓은 장치가 멍에이고 말과 수레를 연결시키는 연결장치가 끌채이다. 멍에와 끌채가 소나 말이 수레를 끌고 갈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연결 장치중 하나다.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공자는 소달구지와 마차를 끌고 갈 수 있는 멍에와 끌채를 신의로 빗대어 강조한 대목이 나온다. 인이무신 부지기가야 대거무예 소거무월 기하이행지재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어디에 써야할지 모르겠다. 우차에 멍에가 없고, 마차에 끌채가 없다면 어떻게 수레를 움직일 수 있겠는가?"

현대 사회 역시 신용은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개인을 넘어 기업과 정부는 신용평가기관을 통해 엄격한 신용등급이 매겨진다. 세계 3대 신용평기기관인 '무디스', '스탠다드 앤 푸어스', '피치'에서 '이 나라가 얼마가 투자할만한가'에 대해 국가별 신용등급을 발표한다. 또한 기업의 재무적 성과를 제외한 환경경영, 사회적책임, 투명한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기업성과를 계량화해 지속가능경영 성과를 평가하는 ESG제도와 함께 신용평가 방식이 다양하다.

경영을 하다 보면 눈앞에 보이지 않거나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요소들을 잊고 살거나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회사의 주력 제품에 관한 고객들의 생각, 협력업체와의 신뢰 관계 같은 요소 등이 있다. 가늠하기 힘든 무형의 요소이기 때문에 소홀해지기 쉽고 그저 '잘하고 있다'라며 넘겨버리기 일쑤다. '신뢰'로 대표되는 믿음의 영역이 그렇다.

몇 년 전 회사의 신제품이 전국적 인기를 얻기 시작할 즈음 고객들의 반응이 갑자기 차가워 졌고 급기야 반품과 교환을 요청하는 거래처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고객들은 품질에 의문을 품고 심지어 거래를 끊고자 하는 거래처들도 속속 나타났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해보니 완성품에 들어가서는 안 될 일부 불량 자재가 완성품에 포함돼 있었다.

이후 문제가 있었던 완성품 전량을 수거하고 교환과 반품 조치를 시행하였다. 우선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난관이 남아 있었다. 바로 공장에서 나와 출고를 기다리고 있던 3만여 개의 완제품이었다. 경영상 결코 적은 금액도 아니었다. 다시 생산하는 것도 리스크가 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솔직히 회사로서는 원가라도 회복하고 싶었다. 품질 신용에 상처를 받을지언정 사용자에 따라 사용 가능한 치명적인 불량이 아닌 저관여 제품이기 때문에 할인 판매를 한다면 시장 역시 허용해줄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창업초기 초심을 떠올렸다. 신의를 강조한 공자의 말을 동의하고 사훈을 '무신불립'으로 정하여 여기까지 왔는데…회사 가장 잘 보인곳에 걸어놨던 색바랜 유리액자 속 글자를 뚫어져라 한동안 유심히 보고 있었다.

나는 종종 녹록치 않거나 막막할 때 아론 랠스톤 이야기를 생각하곤 한다. 아론 랠스톤이 26세인 2003년 그는 블루 존 캐니언 협곡을 등반하다가 바위가 내려앉는 바람에 오른팔이 끼게 되어 5일동안 꼼짝없이 갇히게 되었다. 그가 조난 당한 사실을 아무도 몰라 구조대가 올 가능성은 없었다.

그의 염원이었을까 결국 127시간만에 구조되었다. 구조당시 그의 오른쪽 팔은 없었다. 그는 살기위해 무딘 칼로 오른쪽 팔을 스스로 잘라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아픔과 고통 때문에 결단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아론 랠스톤 이야기는 127시간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제임스 프랭코가 연기하였다.

아전인수, 고민은 멈추고 결국 전량폐기하기로 했다.불량 제품량이 워낙 많아 폐기물처리업체의 차가 다섯번 회사를 다녀 가서야 불량제품 반출 작업이 마무리 되었다. 한차 한차 가득 실고 회사문을 나갈때마다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가듯 뼈아픈 경험이었다.

이후 제품 품질 우월성과 신뢰회복을 위해 수년동안 선택 집중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제품에 대한 신용은 서서히 회복되어 국내뿐만 아니라 품질 요구 수준이 엄격한 일본 시장에 쪼그리 브랜드로 지속적 수출을 하게 되었다. '신용'이란 단어를 심장으로 이해하는데는 많은 시간과 혹독한 쓰라린 경험이 필요했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신용은 제품 이상의 가치가 있는 핵심요소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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