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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공무원의 영혼을 위하여

입력 2021.02.08. 15:31 수정 2021.02.09. 08:35
강준만의 易地思之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우리는 인간이 놀라울만큼 지성을 계발하고도 자기 영혼을 지배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당신의 영혼에게 물어라!"고 권한다. 돈 때문에 영혼을 팔아버리거나, 출세를 위해서 영혼을 배신한다면 영혼은 당신을 심하게 나무랄 것이라는 경고를 덧붙인다. 아름다운 말이지만, 영혼이 호구지책엔 방해가 되는 게 현실임을 어이하랴.

"출근하면서 영혼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퇴근하면서 영혼을 다시 꺼내오는 것 같다." 우석훈 씨의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에 인용된 어느 대기업 직원의 말이다. 공무원도 노동자 못지 않게 영혼 문제로 시달린다. 공무원은 자주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비아냥을 듣곤 하지만, 그게 어디 공무원 탓인가. 공무원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게끔 무슨 일에서건 절대 복종을 요구하는 권력이 문제일 게다.

사실 공무원의 영혼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곤 했던 해묵은 이슈다. 이게 가장 화제가 되었던 때는 국정홍보처 2급 이하 간부들이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 업무보고에 나와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고 말했던 2008년 1월이었다. 노무현 정권 동안 국정홍보처가 주도했던 언론개혁 시도에 대해 인수위가 비판을 하자 "대통령 중심제 아래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한 말이다. 그러자 언론은 앞다투어 '영혼 있는 공무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2009년 2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부 공무원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보루인 만큼 '영혼'을 가져도 좋다"고 했다. 그는 10월 중앙부처 실국장 워크숍에선 "30여 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가장 모욕적인 질문은 '공무원이 혼이 있느냐'는 것"이라며 "그런 얘기를 들으면 울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그런 울분에 공감했던 걸까? 아니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공무원에게 영혼이 없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던 걸까?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돼야지, 그저 정권의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선 안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디 그뿐인가. 집권 초기 여당은 공무원 불복종권을 위한 법 개정까지 추진했다. 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새 정부 출범도 하기 전인 2017년 1월 "직무상 명령이 위법한 경우 복종을 거부해야 한다"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 출범 후엔 인사혁신처가 개정안을 주도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까지 받았다.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국가공무원법 57조에 "상관의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 이의를 제기하거나 따르지 않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어떠한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어떻게 됐을까? 법 적용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이 문구는 국회에서 실종되고 말았다(중앙일보, 2020년 11월 6일).

한바탕 쇼로 끝나고 말았지만, 가볍게 웃고 넘어가도 좋을 일은 아니었다. 이후 문 정권은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강조하면서 공무원의 영혼을 강력히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니 말이다. 물론 무작정 비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정권의 입장에선 사안에 따라 공무원의 영혼을 지켜주기 어려운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게다. 현재진행형인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과 '김학의 출금 공문 조작 의혹 사건'도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이 두 사건은 일견 사소하게 보이지만, 공무원들의 준법 자율성을 말살해 그들을 '영혼 없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중대 범죄행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문 정권은 스스로 '선한 정권'이라고 자부하는 탓인지 절차적 정당성에 매우 둔감하다. 절차적 정당성을 어긴 일에 대한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운운하면서 큰소리를 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을 보이기도 한다. 절차적 정당성은 때론 거추장스럽고 짜증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법치를 하지 않겠다면 모를까 그걸 하겠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은 악하고 불의한 일에만 적용하고 선하고 정의로운 일엔 좀 무시해도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은 내로남불의 극치일 뿐 보편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공무원의 영혼 문제에 대해선 우리 모두 좀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 문제가 자주 정파싸움의 성격을 갖기에 하는 말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권이 공무원의 영혼을 죽이면 '관료 개혁'이라고 하면서 반대하는 정권이 공무원의 영혼을 죽이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게 우리 현실 아닌가. 이런 식으로 내로남불을 저지르다 보면 이 문제는 영영 겉돌면서 바람직한 해법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다. 세상에 전적으로 나쁘거나 전적으로 좋은 것도 없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는 뜻이다. 공무원의 영혼을 지켜주는 일도 명암(明暗)이 있는 것이지 무조건 좋거나 나쁜 게 아니다. 정권은 공무원이 영혼을 갖게 되면 통제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걱정할 것이다. 정당한 우려지만, 통제에만 집착하면 더 큰 걸 놓치게 된다.

영혼은 홀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공복(公僕) 의식은 물론 자율성과 창의성도 동시에 사라진다. 대통령이 한마디만 했다 하면, 별 실속도 없는 대통령의 심기 경호를 위한 일에 불법도 불사하는 공무원의 충성심에 흐뭇해 하는 순간 공무원 조직은 이른바 '무사안일·복지부동·철밥통'의 수렁으로 빠져 들고 만다. 통제에 대한 집착은 국익보다는 정권이익에 더 신경쓸 때에 강해지는 법이다.

공무원 수를 늘리는 데에 적극적인 문 정권이 부디 '양보다는 질'이라는 차원에서 공무원의 영혼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주면 좋겠다. 청와대가 중앙부처들을 틀어쥐고 호령하는 '청와대 정부' 모델을 바꾸지 않고선 기대하기 어려울망정, 공무원에게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만큼은 시키지 말아야 한다. 공무원이 개혁에 능동적으로 임할 수 있는 변화를 위해, 4년 전 문 대통령이 갈파했던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선 안 될 것"이라는 명언이 부디 빈말이 아니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광주·전남 대표 정론지 무등일보는 영남일보(경상), 중부일보(경기), 충청투데이(충청), 제민일보(제주)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역신문사들과 함께 매주 화요일 연합 필진 기고를 게재합니다. 해당 기고는 무등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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