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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넘어북한] 경제 때문에 속이 터지는 김정은

입력 2021.02.19. 10:33
강영진 기자구독
올해 경제계획 불만에 2차 전원회의 개최…향후 북 경제 동향 예측 근거될 듯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회귀 우려 속 '개혁 후퇴 아니다' 평가도
'상업유통부문 현대화로 정부 세원 증대 이점 크다'
김덕훈 총리 회의기간 중 '기업책임관리제 정확히 실시' 언급
한편, 경제 일으킬 유능한 인재 중요성도 강조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북한은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 동안 제8기 2차 전원회의를 열었습니다. 지난달 8차 당대회(1.5-12)를 개최한지 한 달 만이었습니다. 회의에서 국가 주도의 경제관리와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투쟁이 강조되면서 반시장화 정책이 시행될 거라는 우려도 나오지만, 자율성을 부여한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에 대한 언급도 있어 북한 경제의 향방이 주목됩니다. <창 넘어 북한>은 경제문제로 답답함을 토로한 김정은이 어떤 방향으로 경제를 이끌고 있는지 그 내막을 들여다봤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팀 에디터 강영진입니다.

2주 전에 박수성 기자가 북한경제를 다룬 묵직한 책을 소개했는데 오늘 저도 북한 경제 얘기를 다시 해볼까 합니다. 2주 전엔 ‘북한 경제가 망하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이번 주 제목은 ‘경제 때문에 속이 터지는 김정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북한 동향에 관심이 있는 시청자라면 지난주 설 연휴 동안 북한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렸던 것을 아실 겁니다.

1월 초 8차 당대회를 치른 지 한 달 만에 또 큰 정치행사를 하는 걸 보고 좀 의아스러웠습니다. 무슨 큰일이 벌어진 건 아닌가 해서요. 실제로 큰일이 벌어지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언론들은 충실히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설 연휴 동안 진행된 일이라는 점과 북한 특유의 비밀주의가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내용이 경제 관련이어서 좀 따분하다는 점도 이유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주 전원회의가 앞으로 북한의 동향을 예측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늦긴 했지만 제 말씀을 끝까지 들어보시면 남는 것이 있도록 꾸며보겠습니다.

노동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살펴보면 올해 내각의 각 부서에서 수립한 경제계획을 받아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말 그대로 ‘속이 터져서’ 갑자기 회의를 소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척 화가 났던 모양입니다.

노동신문은 김위원장 보고에서 “국가경제지도기관들에서 올해 투쟁목표를 세우는 과정에서 발로시킨 소극적이고 보신주의적인 경향들이 신랄하게 지적되였으며 이를 극복하고 경제조직사업을 혁신적으로 치밀하게 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 문제들이 강조되였다”고 전했습니다.

문장만 보면 김정은이 화를 낸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김위원장의 최측근인 조용원 노동당 조직비서의 발언을 보면 많이 다릅니다. 조비서는 김위원장의 보고가 마무리된 뒤 나선 토론에서 험한 말을 쏟아냈습니다.

노동신문 보도를 좀 길게 인용하겠습니다.

“토론자는 (중략) 일부 일군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심중한 결함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대표적으로 경공업부문에서 조건타발을 내세우며 인민소비품생산계획을 전반적으로 낮추어 놓은 문제, 건설부문에서 당중앙이 수도시민들과 약속한 올해 1만세대 살림집 건설 목표를 감히 낮추어 놓은 문제, 전력공업부문에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의 절실한 요구를 외면하고 전력생산계획을 인위적으로 떨구어 놓은 문제, 수산부문에서 어로활동을 적극화하여 인민들에게 물고기를 보내줄 잡도리도 하지 않은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이처럼 주요계획지표들을 한심하게 설정한데 책임이 있는 당중앙위원회와 정부의 간부들을 신랄히 비판하였다. 나타난 결함은 일군들이 극도의 소극성과 보신주의에 사로잡혀 당대회의 결정도, 인민들 앞에 한 서약도 서슴없이 저버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총비서동지의 사상과 의도를 반대해 나선 반당적, 반인민적 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강하게 추궁하였다. 당조직들은 총비서동지의 령도사상을 정확하게 받들지 않고 맡은 사업을 태만하는 일군들, 자리지킴만 하면서 전진과 혁신에 저해를 주는 일군들을 절대로 방관시하지 않을 것이며 문제를 단단히 세울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조비서가 비판한 사례들은 전부 김위원장이 보고에서 지적한 내용들입니다. 노동신문이 김위원장의 권위를 고려해 크게 화를 냈다고 보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숙청을 서슴지 않아온 김위원장 입에서 이 정도로 강한 표현들이 나왔다면 지금쯤 관련자들은 아마도 덜덜 떨고 있을 겁니다.

그럼 정말 앞으로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질까요?

제 생각엔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김위원장 보기에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든 자리에서 쫓겨날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경질된 김두일 당 경제비서처럼 말이죠. 김두일은 불과 한 달 전 당대회 때 새로 임명된 사람이었는데 올해 경제계획이 잘못된 것에 책임을 지워 경질한 겁니다.

옆길로 새는 느낌입니다만 김두일로선 좀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김두일은 경제분야에서 일해본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내각 경제사업 전반을 지휘 감독하는 자리에 앉혔으니 업무를 감당하기가 벅찼을 겁니다. 경제 경험이 많지 않은 김두일을 경제비서에 앉혔던 건 그만큼 그가 유능하다고 평가한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켜보니 경험 부족이 큰 문제로 드러났고 결과적으로 사고를 쳤으니 해임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8일부터 11일까지 4일 동안 열린 회의가 끝난 다음날 노동신문은 김위원장의 발언 내용을 다시 상세하게 전했습니다.

앞서 조용원 비서가 한 말들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내용들입니다. 보도 순서를 보면 조비서가 먼저 말하고 김위원장이 나중에 말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김위원장이 차근차근 설명하고 달래듯이 말한 것을 조비서가 다시 언급하면서 ‘제대로 안 하면 다 죽을 줄 알라’고 엄포를 놓은 것이죠. 조비서가 김위원장을 대신해 악역을 맡은 겁니다.

앞에서 여러 사람이 덜덜 떨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대대적인 숙청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 건 김위원장이 인재를 크게 아쉬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위원장은 “올해 경제사업을 조직하는 데서 인재를 중시하며 각 분야의 과학기술인재와 관리인재, 당일군들을 육성하는데 특별한 주목을 돌려야 한다”고 인재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지금 나라의 경제를 추켜세우는 데서 제일 걸린 것은 인재가 부족한 것”이라고 개탄하면서 말입니다.

이 발언들은 올해 경제계획을 받아본 김위원장이 소감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처럼 느껴집니다. '일 잘하는 사람이 이렇게 없나'라며 한탄하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재를 아쉬워하는 김위원장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겁을 줘서 얼어붙게 만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김위원장은 전원회의 4일 동안 사실상 원맨쇼를 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야단치고, 이 대목 저 대목 잘못을 지적하고, 부족한 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타이르듯이 설명하고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12일자 노동신문의 보도를 다시 읽으면서 답답함을 토로하는 대목들이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오늘 동영상 제목을 “경제 때문에 속이 터지는 김정은”이라고 정한 이유입니다.

김위원장은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배다른 형인 김정남을 독살하는 등 잔인한 독재자의 이미지가 뚜렷합니다.

그런 김위원장이 잘 한 것으로 칭찬을 받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경제개혁 노력입니다.

김위원장은 2014년 5월 30일 “현실 발전의 요구에 맞게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긴 제목의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이 담화를 두고 당시 언론에선 ‘김정은이 제2의 덩샤오핑될까’라고 보도하는 등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습니다. 중국식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거지요.

실제로 김위원장의 담화가 나온 뒤 북한에선 경제개혁 조치가 상당한 정도로 진행됐습니다. 전국의 모든 군과 구역마다 시장을 2곳씩 설치하는 등 과감하게 시장을 늘렸습니다. 또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강조하면서 기업들의 경영 자율권을 확대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 경제가 미약하나마 성장세로 돌아섰고 시장에 의지해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 점은 2017년부터 유엔 경제제재가 강화돼 경제난이 심해졌는데도 굶어 죽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은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또 2013년부터 환율과 물가가 역사상 가장 안정된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시장 상황을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덩샤오핑처럼 과감한 개방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핵무기 개발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겁니다. 또 개방이 북한 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걱정도 없지 않았을 겁니다.

이에 따라 지난달 8차 당대회와 지난주 전원회의를 지켜보면서 북한이 다시 시장을 축소하고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고 평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김위원장의 발언 내용들을 보면 그렇게 볼만한 대목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막을 꼼꼼히 살펴보면 반드시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 예로 이번 전원회의의 의제 가운데 “전사회적으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더욱 강도높이 벌일 데 대하여”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용을 일일이 설명드리진 않겠습니다만 이것이 시장을 억제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김정은이 개혁을 후퇴시키고 있지 않다고 단언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구, 군마다 2곳씩 설치돼 있는 장마당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있는 건 맞지만 그건 코로나 사태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상점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거지요.

또 시장 주변에서 세금이나 시장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장사하는 노점상이 너무 많아져서 단속할 필요가 생겼고 대신 현대적인 상업유통체계를 확대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2016년 북한 공업출판사가 “슈퍼마케트식 상점조직과 운영”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160페이지 정도 되는 이 책은 상품 진열, 창고관리, 경영정보화 등 현대적 슈퍼마켓 운영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출판된 뒤 현대적인 슈퍼마켓이 평양시에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인근이나 협동농장에 슈퍼마켓을 국가가 설치해 운영함으로써 상업 유통체계를 현대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방식은 앞으로 전국의 주요 도시로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현대적 유통체계가 장마당이 담당하는 시장 기능을 상당 부분 넘겨받게 될 전망입니다. 장마당은 우리로 치면 재래시장 같은 곳인데 슈퍼마켓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재래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장마당 주변에 들끓는 노점상을 단속하면 국가가 상업유통부문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정부 세원을 늘릴 수 있는 등의 이점이 크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원이 노출되지 않는 부문을 억제하고 탈세 사업자를 추적해 세금을 매기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는 일이라는 겁니다.

저 역시 당초 북한이 교조적인 계획경제로 회귀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동신문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대목이 계속 걸리더군요.

김덕훈 내각 총리가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정확히 실시하여 근로자들이 경제관리의 실질적 주인이 되게 하기 위한 현실성 있는 방법론을 완성하겠다고 다짐”한 부분입니다.

경제개혁의 대표적 사례인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강화한다는 말이 교조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회귀한다는 주장과는 맞지 않는 내용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상업유통체계를 설명해 준 분에게 물었더니 김정은이 2014년에 강조했던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가 아직도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오히려 반성하는 내용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김정은이 강조해온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기업관리자들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옛날 방식대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 아직 너무 많다는 겁니다.

이런 점들도 김정은이 속이 터지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네요.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발전 전략을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이 교조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회귀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시각이 최근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언론과 전문가들 시각이 그렇습니다.

김정일 시대에 시장화 개혁조치를 도입하는 듯하다가 되돌렸던 일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김정은 시대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내리기가 쉽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에서 진행되는 일들의 내막을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본다면 그런 평가는 성급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조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실패하면서 몇 십 년 동안이나 뼈저리게 고통을 겪은 북한이 다시 그런 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10년 전, 20년 전 우리가 알던 북한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의 이런 변화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긍정적일까요, 아니면 부정적일까요?

개인적으로는 긍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경제가 현대화되고 성장하면 그걸 지키기 위해서라도 평화를 더 원하게 되지 않을까요?

창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pzcmaria@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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