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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은 아이 둘, 데려 온 아이 둘’로 이룬 무한 행복

입력 2021.03.22. 15:16 수정 2021.03.25. 18:33
김승용 기자구독
조영석이 만난 사람 2.
히아브 코끼리특장(주) 고경석 대표


세상사 만만한 게 있겠는가마는 그 중에서도 자식 키우는 일은 더욱 그렇다. 벼가 쌀이 되기 위해서는 농부의 손을 여든여덟 번 거쳐야 한다지만 자식은 여든여덟 번에 여든여덟 번을 여든여덟 번 더해도 부족한 손길이라는 것을 부모는 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거나 '자식이 웬수'라는 말은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혈연의 처연함이다.

그럼에도 부모가 되는 것을 마다 않음은 자식이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자식이 예쁜 것은 나를 닮았기 때문이고, 자식이 미운 것도 나를 닮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유전자가 갖는 함축된 설명이다. 자신의 유전자에 대한 본능적 애착은 부모가 무한한 간난의 책임을 무한한 기쁨으로 짊어지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와 다른 유전자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낳은 자식이 두 명이나 있음에도 두 명의 아이를 더 입양하여 '나의 유전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예쁘다'고 믿는 사람을 만났다. 히아브 코끼리특장㈜ 고경석(63) 대표를 만나 혈연으로 낳은 자식과 입양으로 낳은 자식을 함께 키워낸 사연을 들었다.

- 아이 키우는 일이 쉽지 않은 시대다. 더군다나 낳은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데도 두 아이를 더 입양하여 키운다는 것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왜'라는 질문을 하는 이유다.

"무슨 대단한 신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영아일시보호소에 봉사활동을 다니고 있던 아내 엄진경(60)의 권유로 두 딸을 더 얻었다. 평소 아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면서 '나도 무엇인가 아이들을 돕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참이다."

- 아내로부터 입양제안을 받고 고민되지 않았는가.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잖은가. 처음에는 반대했다. 이미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입양보다는 관련 단체에 재정지원으로 돕는 것이 좋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돈 보다는 부모가 되어주는 것이 더 좋겠다'는 아내의 말이 가슴에 와 닿더라."

- 천박한 물음일 수 있다. 입양을 위해서는 물질적 여유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먹고 사는 데 불편함을 겪을 만큼은 아니었다. 당시 서른아홉 살로 외국계 특장차 회사인 히아브 광주 대리점 3년차 직원이었다. 형편에 맞춰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키웠다. 물질적 여유가 입양의 선순위 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 입양 당시의 가족관계와 입양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24년 전인 1997년 생후 15개월이던 큰 딸 예란이를 처음 입양했다. 큰 아들 상한(34)이가 여덟 살 이었고, 둘째 귀한(32)이는 여섯 살이었다. 예란이를 집에 데려오자 집안 분위기가 활짝 피었다. 깡패(?)같은 아들 녀석들만 있던 집안에 딸이 생기니 얼마나 좋던지…. 아들들도 여동생이 생겼다고 서로 안아보겠다고 난리 났었다.

그 뒤 큰 딸에게 자매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2002년에 생후 6개월이던 둘 째 딸 예빈이를 다시 입양했다. 올해 스물여섯이 된 큰 딸은 독립하여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스무 살인 작은 딸은 벌써 대학생이다. 아들들은 모두 결혼하여 출가했다."

- 딸들이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은 언제 알았는가. 입양 사실을 알고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지는 않았나.

"처음부터 공개입양 했고 큰 딸이 다섯 살이 됐을 무렵 알려줬다. 큰 딸이 생모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자 초등학교 3학년 때 생모를 수소문하여 만나게 했다. '네가 성인이 되면 얼마든지 생모를 만나고 교류해도 된다'고 평소 알려줬었다. 딸에게는 생모와의 상봉이 낳아준 부모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계기가 돼 오히려 도움이 됐다.

지금은 '울 딸, 시집갈 때가 됐는데 친모에게 알려야 겠다.'고 놀리며 서로 웃는다. 작은 딸 예빈이도 필요할 경우 만나게 해줄 생각이다."

-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당신만의 철학이 있는가.

"철학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거창하지만 아이들은 목수가 대패질 하듯이 키워야 한다고 믿는다. 훌륭한 목수는 나무결의 흐름을 잘 살려 대패를 밀거나 당겨야 한다. 아이들의 관심과 재능을 찾아서 존중하고 뒷바라지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대신 아이들이 가정의 지켜야 할 원칙은 존중하여 지키도록 했다."

- 둘씩이나 되는 딸을 데려다 키우면서 갈등이나 후회한 적은 없는가.

"아이들이 성장통을 겪는 시기가 있지 않는가. 딸들이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저녁 9시 이전 귀가토록 했고, 또는 교복도 줄여 입거나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문제 등으로 많이 부딪혔다.

한 번은 큰 딸 예란이가 중학교 시절 머리 염색을 하고 오자 머리칼을 잘라버린 적이 있다. 부모가 되기로 했으니 간섭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같으면 고발감'이라고 서로 웃으며 얘기하지만 당시는 난리가 났었다.

내가 난 자식도 '저 얘가 내가 낳은 자식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갈등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자식을 키우면서 겪는 부모자식간의 그런 갈등이었지 입양아이기 때문에 특별히 갈등을 겪거나 후회한 적은 없다."


- 염색했다는 이유로 딸의 머리칼을 자르는 것이 '콩쥐', 즉 '데려 온 딸'에 대한 차별로 받아들이거나 학대로 비칠 수도 있다.

"친자, 입양아 가리지 않고 똑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훈육하는데도 주변에서 편견의 시선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은 내면의 양심으로 견디는 것이지 설명한다고 해소되는 문제는 아니다. '데려 온 딸'이라는 생각이 있었으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가 되기로 한 이상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간섭과 꾸지람은 부모의 당연한 책무가 아닌가."

- 보람이나 기쁨을 귀띔해 준다면.

"독립해서 따로 살고 있는 큰 딸이 요즘 핸드폰 문자를 자주 보낸다. '아빠 잘 있느냐. 밥은 잘 드시냐.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문득 아빠가 고마워졌다. 이렇게 힘들게 돈 벌어 우릴 키워주어서 고맙다.' 그런 내용이다. 더 바랄 무슨 기쁨이 있겠느냐. 탈 없이 잘 커준 것 만해도 고마운데….

지금은 1주일에 한 번씩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도 하고 교회도 같이 다니는 것이 큰 기쁨이자 보람이다. 출가한 아들네도 오고, 독립해서 살고 있는 큰 딸과 지방에서 대학에 다니는 둘째 딸도 오면 꽃동산이 부럽지 않다(웃음)."

- 광주에는 입양 가정이 얼마나 있는가.

"150여 가정이 전국 입양가족 모임인 ㈔한국입양홍보회(MPAK) 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모두 공개입양 가정이다. 전체 입양가족의 20%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입양 가족끼리 모여 야유회나 각종 체험활동, 송년회, 입양 아동들끼리의 또래모임 등의 정기적 교류와 여러 가지 입양 청소년을 위한 사업도 한다. 같은 경험의 공유로 모두가 친척 같은 유대감으로 살고 있다."

- 입양을 희망하는 가정이 있다면.

"낳은 아이가 이미 있는 가정에는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한다. 입양은 자랑거리나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아이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기 위해 입양하겠지만 결과는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없는 가정에는 적극 권유하고 싶다. 아이 키우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주는 기쁨보다는 크지 않다는 것을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더구나 아이는 가정을 유지하게 하는 초강력 접착제 역할도 한다."

고 대표는 큰 딸 예란을 입양했던 이듬해인 1998년 광주에서 처음으로 '입양가족 모임'을 결성, 2016년까지 대표로 활동하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는 MPAK 회장을 지냈다.

2019년 제14회 입양의 날 기념식에서 입양가족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재는 광주시 광산구 소촌산단에서 집게차와 카고크레인 등의 판매와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히아브 코끼리특장㈜을 운영하고 있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가 모르겠다."며 한사코 사양했다. '입양 아이를 키우는 것이 신문에 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다'라는 생각이었던 듯싶다. 인터뷰를 하면서 추측은 사실로 확인됐다. 대단한 명분이나 자신의 선함을 드러내는 말을 기대했지만 듣지 못했다. 말 그대로 '자식 키우는 평범한 얘기'를 들려줬다. '평범한 얘기'가 웅변보다 나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헤어져 돌아서는데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라는 내면의 질문이 내게로 향했다. 벚꽃이 공단 주변도로에서 해맑게 피어나고 있었다.

조영석 시민기자 kanjoy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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