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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택 분배의 원칙과 도시의 정체성

입력 2021.09.24. 10:51 수정 2021.09.26. 19:01
도철원 기자구독
공진성 아침시평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26일 독일에서는 총선이 치러졌다. 누가 새 총리가 될지도 관심사이지만, 수도 베를린에서 실시되는 주민투표의 가결 여부도 관심사이다. 베를린의 임대료 폭등 문제는 이미 국내 언론이 다룬 바 있지만, 대부분 보수 언론은 그러니까 우리도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결론을, 진보 언론은 그러니까 우리도 공공주택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이 문제를 다뤘다. 사안을 다르게 한번 살펴보자.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통일이 된 후 한때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의 많은 시민들은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베를린을 떠났다. 안 그래도 낙후해 있던 동베를린은 사람들이 떠나서 더 낙후하게 됐다. 그 허름한 곳에서 기꺼이 살려는 사람은 가난한 대학생과 예술가, 외국인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기꺼이 찾는 '힙'한 베를린의 원형은 그렇게 탄생했다.

10여 년이 지나 독일 수도가 본에서 베를린으로 바뀌었고, 연방의회와 정부도 대부분 베를린으로 옮겨왔다. 각국 대사관도 베를린으로 옮겨왔다. 정치인, 공무원, 외교관 들이 베를린으로 오자 그들을 상대로 일하는 사람들도 베를린으로 왔다. 비어 있던 집들이 차기 시작했고, 수요가 늘자 임대료가 올랐다.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직장과 함께 베를린으로 옮겨 온 사람들은 대부분 지불능력이 좋아서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었지만, 전부터 베를린에서 살던 소득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도심 밖으로 밀려났다. 살던 곳에 공공주택이라도 있으면 그곳에 들어갈 텐데, 과거 빈집이 속출하고 시정부가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때 팔아버려서 이제 소득이 적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었다. 급기야 '탈사유화' 주장이 나왔다. 소득이 없거나 적은 사람도 일자리가 많은 도심 근처에서 살 수 있도록 과거에 팔아버린 공공주택들을 시정부가 다시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곳에 모두가 살 수 없다면 과연 누가 살아야 할까? 먼저 살기 시작한 사람이? 아니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주택 공급을 늘리면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주택 공시가격이 발표되고 그에 따라 보유세가 부과되면, 자기 집값 오르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세금이 너무 많이 올랐다고 불만을 쏟아내곤 한다. 이때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소득은 없고 가진 것은 그저 집 한 채 뿐인데, 하필 그 집이 서울 강남에 있고, 자기가 올린 것도 아닌 그 비싼 집값 때문에 보유세는 자꾸 올라서 곧 쫓겨나게 생겼다는 은퇴자의 사연이다. 언론은 그 집이 한 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쫓아내고 지은 것이고, 그 사람들도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었지만 새 집에 들어가 살 돈은 없고 근처에 저렴한 집도 없어서 결국 밀려났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월세건 보유세건 간에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살던 집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떠나야 할까? 먼저 살고 있었다고 해서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곳에 살 권리를 영원히 독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주택을 지불능력만을 기준으로 분배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점점 살기 좋은 곳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고, 길 위에서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할 것이다. 살기 좋고 일자리와 가까운 곳에는 지불능력이 좋은 사람들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지불능력은 영원할까? 보유세 인상에 대한 비판이 혹시 그 지불능력을 저렴하게 오래 보유하려는 기만적 술책은 아닐까?

처음에 베를린은 임대료 인상 금지를 선택했다. 그것은 도시의 정체성과 관련한 결정이었다.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원하는 곳에 살 수 있는 도시가 될 것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원하는 곳에 살 수 있는 도시가 될 것인지, 계속해서 팽창하며 주변의 인구를 빨아들이는 도시가 될 것인지, 적정 규모를 유지하며 다양한 사람이 섞여 사는 도시가 될 것인지를 두고 내린 정치적 결정이었다. 그러나 임대료 인상 금지가 주정부의 권한이 아니라고 해서 위헌 판결이 나자 베를린 시민들은 과거의 공공주택을 다시 사들이는 '탈사유화' 안건을 주민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우리에게는 도시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어떤 논쟁이 있고 그것을 결정하기 위한 어떤 정치적 수단이 있나? 대통령 한 사람과 그의 공약에 모든 것을 걸고 있지는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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