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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Feel the Rhythm of Korea의 주역들

입력 2021.10.15. 17:50 수정 2021.10.17. 18:47
도철원 기자구독
정지아 아침시평 소설가

나는 전혜린과 헤르만 헤세와 루이제 린저를 읽으며 청춘의 시기를 보냈다. 등 굽은 노인이 자전거를 타고 가스등을 켠다는 뮌헨의 거리, 절름발이 화가 로트렉이 무희들과 어울린다는 몽마르뜨, 언젠가는 그런 곳에 가보는 게 꿈이었다. 그 시절의 청춘들에게 유럽은 근대의 발상지였고, 근대적 자아의 표상이었다. 1989년 해외여행이 전면적으로 자유화되었고, 90년대 후반 영국에서 몇 달을 머물렀다. 내 마음속에 유럽은 여전히 근대의 표상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런던의 도시마다 몰려든 젊은 어학연수생들은 나와 전혀 달랐다. 대부분 대학생이었던 그 아이들은 건물이 낡았네, 놀 데가 없네, 먹을 게 없네, 영국 생활에 불만이 가득했다. 자본주의 종주국이었던 영국을 낡고 고루하다고 비판하는 거침없는 아이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가 이미 살만해졌고, 살만해진 대한민국에서 유년을 보냈던 아이들은 조국에 대한 자긍심도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성장하던 시절, 내 조국은 늘 부끄러웠다, 가난은 자본주의 후발주자로서 어쩔 수 없다 쳐도 술자리에서 대통령을 욕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잡혀들어가는 나라,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세계적인 이론서들조차 번역하지 못하게 하는 나라, 서울의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무너지는 나라, 정경유착이 당연시되는 나라, 의원님들만 타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는 나라, 무엇 하나 부끄럽지 않은 게 없었다. 에베레스트라도 가는 양 중무장을 하고 동네 뒷산을 오르는, 남들이 롱 패딩을 입으면 어떻게든 나도 입고 봐야 하는 국민성도 맘에 들지 않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21세기가 되고 어느새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이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는데도 나의 조국을 보는 관점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얼마 전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Feel the Rhythm of Korea를 보았다. 지난해 발표한 이후 무려 6억 명 넘는 사람들이 보았다는 화제의 동영상이다. 동영상을 보고 느낀 충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물론 동영상 속의 대한민국은 내가 아는 바로 그 대한민국이었다. Feel the Rhythm of Korea에는 선진적인 한국과 후진적인 한국이 가감없이 담겨 있었다. 나라면 부끄러워 차마 담지 않았을 파고다공원의 노인들, 알록달록한 원색옷에 선그라스에 한껏 멋을 부린 노인들. 내가 익히 아는 장면들 위로 힙하디 힙한 국악 '범 내려온다'가 울려펴졌다. 국악이 힙하다니. 그 또한 충격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조국을 부끄러워하고 있는 사이, 격동의 모순 속에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가 조국을 다른 차원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국악과 힙합이 뒤섞이고, 현대와 전근대가 뒤섞여 탄생시킨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힙함이었다.

아이돌 제조 시스템이 만들어낸 뻔한 음악이라고 무시했던 방탄소년단이 빌보트 차트를 휩쓸고, 뻔한 신파나 신데렐라물이나 만든다고 무시했던 한국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90여개 국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꿈과 같은 세상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드라마를 본 전 세계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달고나 키트를 사서 직접 만들어 먹는 세상을 말이다. 누군가는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 세계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듯 이제는 케이 팝과 케이 드라마를 통해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할 정도다. 이는 물론 김대중 정부로부터 탁월한 비전을 가지고 추진해온 '굴뚝 없는 산업' 즉, 문화산업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정책적 지원과 지지의 결과겠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조국에 대한 열등감이 없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다. 게임이나 한다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인내심이 없다고 낡은 세대로부터 줄곧 비난받아 왔던 바로 그들이 케이 팝, 케이 드라마의 주역들이다. 그들은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을, 동묘나 파고다의 그늘을, 열등감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 문화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젊은 세대를 통해 나는 요즘, 조국을 다시 읽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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