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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전 고문 선명한데···사과없이 숨진 전두환 원망스럽네요"

입력 2021.11.24. 11:58

기사내용 요약

5·18 당시 도청에서 붙잡힌 시민군 양동남씨

"계엄군의 거꾸로 매달기 고문 아직도 악몽"

"발포명령자·행불자 찾아내 역사적 단죄해야"

[광주=뉴시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해 41년째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있는 양동남(61)씨. KBS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모습. (사진=양동남씨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41년이 지나도록 거꾸로 매달려 있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어요. 사과라도 하고 갔으면 속이라도 편했을 것인데…"

1980년 5·18 당시 전두환 신군부에 붙잡혀 고문을 당했던 양동남(61)씨.

당시의 고통을 41년째 안고 살고 있는 양씨는 24일 "전두환 사망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에 왔을 때 사과라도 했으면 마음속 응어리가 조금은 풀렸을 것인데 이제는 그 말 조차 들을 수 없어 더 원망스럽다"고 심정을 표현했다.

5·18 당시 평범한 청년이었던 양씨는 그해 20일 가톨릭센터 앞에서 수레에 실려있던 시신을 보고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옛 전남도청으로 뛰어갔다.

시민군 기동타격대에 합류한 양씨는 도청이 신군부에 장악되던 27일까지 버텼으며 현장에서 붙잡혀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갔다.

양씨는 "구타는 매일 있었고 거꾸로 사람을 매달아 놓고 물을 부으며 고문을 했다"며 "당시의 기억 때문에 이발소에 가면 뒤로 누워 머리를 숙여야 하기 때문에 감겨 달라고 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217일동안 신군부에 붙잡혀 있었던 양씨는 그해 12월29일 석방돼 세상으로 나왔지만 변해버린 모습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5·18에 대해 이야기만 꺼내면 '불순분자'로 몰렸고 감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육체적 고통과 함께 동반된 정신적 트라우마였다.

양씨는 "잠을 자도 고문을 당했던 악몽을 꿨고 온 신경이 애민해져 정신과 등 안다녀 본 병원이 없다"며 "최근에는 심장에 이상이 있어 스텐트 시술까지 했다"고 말했다.

또 "5·18 때 당했던 기억과 전두환은 아직도 온몸의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며 "분노 밖에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양씨는 "전두환 사망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진실규명 등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전두환은 이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 거짓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두환에게 역사적인 심판이 가해 질 수 있도록 남은 자들이 발포명령자를 밝혀내고 41년째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행방불명자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gryu77@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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