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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MBC, 이게 방송 민주화인가?

입력 2022.01.17. 10:57 수정 2022.01.18. 08:59
주현정 기자구독
강준만의 易地思之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김건희 녹취록' 논란은

김건희와 윤석열의 자업자득

이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엔 관심없다

관심을 갖는 건 공영방송 존재 이유

MBC가 아니어도 녹취록 방송은

다른 매체들에 의해 이루어질텐데

왜 굳이 공영방송이

'두개로 쪼개진' 공론장의 한복판에

사실상 어느 한쪽을 편드는

역할로 뛰어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게 6년 전 MBC 기자들이

그토록 울부짖었던 방송 민주화인가?

"이러려고 기자 된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MBC 기자라는 사실이 시대의 죄인이 된 기분이다." "MBC 취재진인지를 알아챌까 봐 마이크 태그마저 떼어낸 채 '몰래 중계차'를 타야 했다." "'짖어봐'라거나 '부끄럽지 않냐'고 호통을 치는 분들도 있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인터뷰를 시도하면 '배터리 아깝게 왜 찍으려 그러느냐', '청와데스크 말고 뉴스데스크에 나가는 거 맞느냐' 등등 조소와 비아냥만 날아들기가 다반사다." "집회 내내 취재진을 쫓아다니며 '여기는 MBC 기자들이니 인터뷰하지 말라'고 안내하는 시민들도 만나게 된다."

지난 2016년 11월 촛불집회의 현장에서 시민들로부터 이런저런 봉변을 당한 MBC 기자들의 증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방송민주화를 위해 애쓰던 방송인들이 가혹한 탄압을 받고 방송현장에서 쫓겨난 가운데 완성된 이른바 '어용 방송'의 비참한 모습이었다. 모든 비극은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당 대선 주자 문재인은 2016년 12월 방송민주화를 위해 고초를 겪다가 암투병 중이던 MBC 기자 이용마를 찾아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법적장치를 확실히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곧 공영방송의 독립이 이루어질 걸로 믿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용마는 2019년 2월 13일 병석에서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공영방송 사장 선임과정에 공론화위원회 방식의 국민대표단 제도를 전격 도입해 국민들이 직접 사장을 뽑을 수 있게 하면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정치권 눈치를 볼 일이 없어질 것이다. … 이런 의견성 글도 거의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온몸의 에너지가 빠져서 머리로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용마는 그 해 8월 21일 세상을 떠났지만, 이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문 정권 하에서 MBC는 180도로 달라져 '적폐청산'에만 심혈을 기울였을 뿐 '공정'이니 '독립'이니 하는 것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2019년 9월 말 '조국 수호 촛불집회'가 열리자 집회 현장에 드론을 띄운 보도국장 박성제는 김어준의 교통방송 라디오에 출연, "딱 보니까 100만(명)짜리 (집회)"라고 했다. 그는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검찰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역대 어느 방송사의 보도국장이 그런 정치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적이 있었던가. 박성제는 2017년 7월에 출간한 '권력과 언론'이라는 책의 결론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숙명이다"며 "문재인 정권을 어떠한 각도에서 감시하고 비판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신뢰를 회복해가려는 언론인이라면 이 같은 질문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묻고 답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을 감명깊게 읽었던 나로서는 MBC가 대다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2020년 2월 사장이 된 박성제의 MBC는 검찰과의 본격적인 전쟁에 뛰어든 것처럼 보였다. 누가 옳건 그르건, '조국 사태'로 인해 '두개로 쪼개진 나라'에서 어느 한편을 돕는 게 과연 그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었을까?

한동안 검찰 관련 뉴스의 한복판에 MBC가 있었다. MBC는 이른바 '검언유착' 보도를 주도했고, 이 보도는 추미애의 법무부를 움직이는 근거가 되곤 했다. 나중엔 '검언유착'이 아니라 MBC가 참여한 '권언유착'이라는 의혹이 우세해졌지만, 이는 '공정' 개념을 상실한 문 정권에선 밝혀질 수 없는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2021년 7월 9일 MBC는 뉴스데스크에서 "본사 취재진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의 박사 논문을 검증하기 위한 취재 과정에서 취재 윤리를 위반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사과 방송을 했다. 취재를 위해 경찰 신분을 사칭했다는 것인데,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걸까? MBC를 지배하는 그 어떤 분위기가 있는 게 아닐까?

이틀 전 MBC는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모은 '김건희 녹취록'을 방송했다. 국민의힘은 "김씨 동의를 얻지 않은 불법 녹취"라며 법원에 보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보도 금지 가처분과 같은 '사전억제(prior restraint)'는 언론 자유를 해칠 수 있으므로 언론이 결사 반대하고 법원이 가급적 언론의 손을 들어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건 언론사 자체 취재 기사일 경우다. MBC는 사실상 편집과 배포의 역할만 맡았을 뿐 알맹이인 녹취록은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로부터 건네받은 것이다. 유튜브에 압도당하는 지상파 방송의 몰락을 시사하는 상징적 사건인가? MBC가 지상파의 자존심을 버리고 작은 유튜브 채널의 '하청' 역할을 맡은 건 겸손으로 이해하기로 하자. 녹취와 관련된 언론윤리의 문제도 그냥 넘어가자.

나는 '김건희 녹취록' 논란은 김건희와 윤석열의 자업자득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갖는 건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다. MBC가 아니어도 녹취록 방송은 어차피 다른 매체들에 의해 이루어질텐데 왜 굳이 공영방송이 '두개로 쪼개진' 공론장의 한복판에 사실상 어느 한쪽을 편드는 역할로 뛰어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게 6년 전 MBC 기자들이 그토록 울부짖었던 방송 민주화인가?

MBC는 '편들기'가 아니라 해당 방송의 공익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익적 가치가 매우 높은 '대장동 사태'에 대해선 그런 열의를 보인 적이 없는 것 같다. 조국 사태에서도 어느 한쪽의 공익만 보았지 생각을 달리하는 쪽이 말하는 공익은 외면했던 것 같다. 이른바 '선택적 공익'은 피해야 하는 게 아닐까?

방송민주화는 진보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보수는 반드시 이겨야 하거나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MBC 방송강령은 "사회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불편부당한 공정방송에 힘쓴다"고 돼 있지 않은가. 처음에 천명한 원칙과 정신에 충실한 것이 방송 민주화다. 나는 MBC가 더 멀리 내다보면서 현재 살벌한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화합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본분에 충실해주면 좋겠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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