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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평 쓰기가 어려운 이유

입력 2022.07.27. 11:26 수정 2022.07.31. 18:38
김승용 기자구독
공진성 아침시평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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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쓰기가 너무 어렵다. 글쓰기 자체가 힘든 것도 있지만, 한국의 정치 상황이 너무 빨리 변해서 더 힘들다. '시평(時評)'인 만큼 시국에 맞춰 글을 써야 할 텐데, 생각이 좀 정리될 법하면 상황이 바뀌어서 애초의 소재가 이미 사람들 관심 밖에 있고, 새로운 관심사에 대해서는 내가 아직 쓸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늘 이런 식이다. 부족한 내 지식과 순발력을 우선 탓해야 하겠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깊이 생각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변화 속도 탓도 좀 하고 싶다.

지난 5주 동안 내 머릿속에 머물렀던 여러 주제 가운데 첫 번째는 추첨제였다. 광주 광산구의회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의장 후보 선출에 합의하지 못해서 결국 '제비뽑기'로 결정한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웃지 못할 촌극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나는 이런 반응이 추첨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원조 민주정에서는 추첨제가 널리 쓰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오늘날 민주적 방법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투표제보다 시민들 사이의 평등 원칙에 훨씬 더 부합하는 민주적 방법이라고 믿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날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이 추첨제의 부활과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초의회 의장을 뽑을 때도 추첨제를 사용하거나 의원 수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아예 임기를 더 짧게 해 돌아가면서 의장직을 맡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 상황은 이런 내용의 시평을 쓸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느새 상황은 바뀌어서 대통령 비서실의 이른바 '사적 채용' 논란이 일었다. 여당 일각에서 이 채용을 엽관제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고 했다. 대선 승리에 기여한 사람을 채용해 보상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그 말은 대선 승리에 기여하고도 아직 관직으로 보상받지 못한 사람이 많으니까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은 알아서 빨리빨리 자리를 비우라는 뜻이기도 했다. 감사원을 이용해 자진사퇴를 압박하면서까지 대선 승리의 공신들에게 줄 자리를 마련하려고 애쓰는 여당 인사들은 엽관제가 불가피하며 이를 차라리 법제화하자고까지 주장했다. 민주화의 역사는 분명 정치가 직업이 된 역사, 즉 정치를 통해 먹고 살 수 있게 된 역사이다. 그렇지 않다면 부자들만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므로 민주주의는 가난한 사람도 정치를 통해 먹고 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그 보장책이 엽관제일 수는 없다. 현대의 국가는 과거에 비해 너무 커졌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전문성 없는 선거 공신들에게 줘도 무방할 관직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이고, 지금이 그렇게 해도 좋을 정도로 한가한 상황인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나는 100여 년 전 의회민주주의가 막 시작된 독일에서 막스 베버가 한 말들을 인용해 오늘날 직업 정치의 과제가 무엇이며 왜 엽관제가 한가한 소리인지를 설파하고 싶었다.

그러나 또다시 상황은 바뀌어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추진이 문제가 되었다. 경찰의 집단 반발을 행안부 장관이 '쿠데타'에 비유하며 비판하자 그 집단행동을 주도한 총경이 경찰국 신설이야말로 '쿠데타'라고 응수했다. 작년 5월에 광주방송과 함께 쿠데타에 관한 방송을 준비한 적이 있는 나는 시의적절하게 쿠데타 개념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싶었다. 쿠데타의 표면적 현상은 물리적 폭력을 다루는 집단의 불법적 움직임이지만, 쿠데타의 본질은 근대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물리적 폭력의 통제 핵심을 누군가가 불법적으로 장악함으로써 사실상 국가 전체를 장악하는 것임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의 핵심은 경찰에 대한 행안부의 통제 자체가 아니라 그 통제가 얼마나 합법적이며 국민의 뜻에 부합하는지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은 곧 바뀔 것이고 국민의 관심도 언론의 관심과 함께 곧 바뀔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글을 쓰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민주주의는 어떤 사안에 대한 국민 다수의 이해와 동의를 위해 다 함께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요구하지만, 현대 사회의 변화는 갈수록 빨라지고 정치 역시 사회의 변화 속도에 맞춰 그저 즉흥적으로 빠르게만 대응한다. 그래서 시평 쓰기가 너무 어렵다.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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