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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살아남은 자의 슬픔

입력 2022.11.07. 10:09 수정 2022.11.08. 09:02
김승용 기자구독
이정우의 우문우답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북대 명예교수

요즘 눈부시게 발전하는 심리학의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이타심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래서 온갖 사고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세상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게 아니겠는가. 일부 추악한

이기적 무리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착하고 양심적으로

살아가며, 자기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남을 돕기 위해 나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준다.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명복을 빈다

10월 29일 서울 이태원 할로윈 축제의 밤에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156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순식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생과 사가 순간의 차이였다. 불과 30분 전만 해도 마냥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그 누구도 엄청난 불행이 문앞에 와있다는 것을 몰랐으리라. 그 골목은 누구나 지나다니는 평범한 골목인데, 그곳이 지옥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이런 사고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가늠할 수 없어서 우리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변호사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 비유대로 우리가 산다는 게 생과 사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라도 큰 실수나 잘못 없이도 그저 한 발만 삐끗하면 그냥 생과 작별하고 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력은 참으로 오묘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이번 주 봉화 두 광부의 기적적인 생환에서 보듯 무한한 강인함을 갖고 있는가 하면 이태원 사고에서 보듯 허약함도 갖고 있다. 나는 봉화 광부의 생환 소식에 코끝이 찡한 감동을 느끼면서 이태원의 젊은 생명들은 왜 그리 허망하게 스러져 갔는지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이번 비극 속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구조 활동에 나서 여러 생명을 구해낸 미담 사례들이 넘쳐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동두천에 근무하는 미군 3명이 이태원 비극의 현장에서 여러 젊은이들의 목숨을 구한 것은 고맙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현장에서 심폐소생술 등 결사적으로 구조활동을 했던 20대 한국인 청년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생명을 구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이 자기 잘못인 것 같아서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한다. 이들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을 스스로 짊어지고 괴로워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가 세월호 때도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나는 2012년 12월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한 뒤 실망과 좌절감이 너무 커서 그 뒤 세상을 멀리 하고 신문, TV 뉴스를 일절 안 보고 살았다. 그러다가 세월호 사고가 터지자 뉴스를 안 볼 수 없게 됐다. 세월호 뉴스를 하루도 빠짐없이 눈이 빠져라 보면서 혹시 한 명이라도 더 생존자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달 가까이 지난 어느 날 제주도에 사는 손 아무개라는 청년을 손석희 앵커가 전화로 인터뷰하는 것을 듣게 됐다. 손 청년은 제주도 집으로 가기 위해 인천에서 세월호를 탔다가 사고를 만났다. 그는 사력을 다해 수십명의 학생들을 구조했다. 그러나 배는 점차 기울고, 손 청년도 더 이상 있다가는 위험하겠다는 판단을 하고 바다로 뛰어들려고 하는데, 저 아래 배 밑바닥에서 여학생 한 명이 구해달라고 고함을 치는 게 아닌가. 주위에 커텐이나 밧줄이 있으면 내려주겠는데 그런 것도 없고, 스스로 밑으로 뛰어 내려가 구출하자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아서 결국 약간의 망설임 끝에 손 청년은 그 여학생을 살리는 것을 포기하고 배를 어렵사리 탈출해서 살아나왔다. 잠시만 더 지체했어도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제주도 집으로 돌아갔는데,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눈을 감으면 그 여학생 모습이 떠올라 양심의 가책을 받고 괴로워 한 달 내내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손석희 앵커와 손 아무개 청년 사이에 오가는 이 대화를 들으면서 참으로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 청년은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다. 스스로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여러 명의 목숨을 살린 영웅이다. 그런데도 마지막 한 명을 더 살리지 못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심지어 그 여학생이 나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여러 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는 이야기를 그 뒤에 들었다. 나는 그 뒤 손 청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전혀 듣지 못했지만 부디 그 양심적인 청년이 스스로 짊어질 필요가 없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빈다.

이런 게 인간이 아닌가. 우리는 학교에서 성악설, 성선설을 배웠는데, 요즘 눈부시게 발전하는 심리학의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이타심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래서 온갖 사고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세상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게 아니겠는가. 일부 추악한 이기적 무리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착하고 양심적으로 살아가며, 자기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남을 돕기 위해 나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준다. 남의 목숨을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으나 다 구하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 사람들, 모르는 남이지만 꽃을 바치며 슬퍼하는 수많은 우리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까 해서 독일의 유명한 좌파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한 수를 남기며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명복을 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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