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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술가와 군인

입력 2022.11.14. 12:33 수정 2022.11.14. 14:29
김승용 기자구독
김상봉의 신파와 미학 사이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세속적으로 성공한 예술가가 삶과

현실에 대한 물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삶에 대한 진지하고도 치열한

물음은 오직 현실의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는 정신에게만 허락되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의 군 입대는

그들의 예술을 위해서는 아마도 다행일 것이다

왜냐하면 필경 그들도 군 생활을 통해 내가

그랬듯이 남북분단의 비극 앞에서 전율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그리고 그 비극적

현실 속에서 예술의 힘과 무능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게 될 것이므로.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결국 군대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내 지난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좀 애매하게 병역의 의무를 마친 축에 속한다. 입대할 나이가 되어 병무청 신체검사를 처음 받았을 때, 내가 받은 판정은 무종이었다. 체중 미달 때문이었는데, 무종을 받으면 다음 해 다시 신체검사를 받게 된다. 삼 년째 검사에서 다시 무종을 받았을 때, 징병관이 내게 말했다. '너는 고졸이면 면제지만, 대졸이니 방위라도 갔다 와라.'

하지만 나는 방위가 아니라 예비역 소위로 병역의무를 마쳤다. 그 무렵 새로 생긴 이른바 석사장교 제도 덕분이었다. 석사학위를 받은 청년들 가운데 일정 인원을 시험을 통해 선발해 6개월 동안 장교훈련과정을 거쳐 소위 계급으로 임관시키면서 동시에 예비역으로 편입시키는 제도였는데, 나는 그 덕분에 예비역 사관후보생 3기로 병역을 마쳤다.

영천의 육군제3사관학교에서 넉 달 동안의 군사교육과정을 마치면 후보생들은 두 달간 이른바 실습소대장이라는 이름으로 전방 사단에 배속되었다. 내가 배속된 곳은 철원의 어느 사단이었는데,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남북분단이 초래한 초현실주의적 공간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비무장지대라는 이름과 정반대로 모든 것이 오로지 전쟁 때문에 그리고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그 공간에서 나는 만약 지금 여기서 전쟁이 일어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되물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영천에서 배운 대로 해야겠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남북이 휴전선에서 서로 확성기를 통해 체제 선전도 하고 상대방 비판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소리 가운데는 노랫소리도 있었다. 북쪽 확성기에서 매일 흘러나오던 노래는 아마도 전방에서 군대 생활을 한 모든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다 기억하고 있을 그 노래,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으로 시작하는 김일성 찬가였다. 남쪽 스피커에서 들려준 노래는 노사연씨의 '님 그림자'였다. 그 노래가 특별히 더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을까, 남쪽 스피커에서 그 노래만 들려준 것은 분명 아니었을 텐데, 무슨 까닭인지 다른 노래는 전혀 기억이 없고, '휘황한 달빛 아래 님 뒤로' 이어지던 그 노래만 비현실적인 비무장지대의 달밤 풍경과 함께 추억처럼 남아 있다.

그러니까 그 짧은 기간에 휴전선에서 내가 체험한 두 체제의 충돌은 결국 노래 싸움이었다. 한쪽에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금지곡으로 묶는 권력자와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사는 국가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아무 저항 없이 일사불란하게 권력자를 우러르고 찬양하는 노래를 듣고 불러야 되는 사람들의 국가가 있었다. 아무리 모순된 사회라도 그 모순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변화하고 진보할 수 있지만, 저항이 멈춘 사회는 아무런 진보도 기대할 수 없는 죽은 사회이다.

그 후 나는 더러는 나라 안에서, 북한의 세습을 비판하면, 북한 인민이 자유롭게 선택한 체제를 왜 비판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만났고, 더러는 나라 밖에서 북한 체제가 마치 남한과 동등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체제인 것처럼 가르치려 드는 북한 전문가들의 책도 읽었으나, 그 모든 것이 내가 젊은 날 휴전선 철책 앞에서 내린 판단을 바꾸지는 못했다. 미 제국주의에 저항한다는 명분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억압적 통치를 정당화할 수 없듯이, 헌법전문에 김일성 김정일 개인을 지칭하며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전변시키시였다."라고 선언하는 북한도 정상국가는 아니다. 국가는 가족이 지양된 곳에서 비로소 열리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휴전선 철책 앞에서 남북한 사이의 차이와 대립에만 주목했던 것은 아니다. 거기서 느꼈던 긴장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위태로운 평화인지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우발적인 충돌이 전면적인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폐허로 변할 수밖에 없는 분단 상황에서 남북 간의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나는 그때 이후 오늘까지 잊은 적이 없다. 게다가 남과 북의 분단은, 요즘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을 둘러싼 소란에서 보듯, 정작 비무장 민간인을 살해한 것은 북한인데 마치 남한 정부가 살해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우리 자신을 맹목적인 분열에 빠뜨린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의 화해와 공존은 우리는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전제이다. 하지만 나는 공존하기 어려운 또 다른 '나'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돌아보면 내 평생의 철학 공부는 남과 북의 겨레가 더불어 공감하고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나라와 세계에 대한 모색이었다. '만남의 철학'도, '서로주체성의 이념'도 모두 오래전 비무장지대 철책 앞에서 묻지 않을 수 없었던 물음에 대한 응답이었던 것이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진지한 예술가들이라면, 그들 역시 군대 생활을 통해 내가 직면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물음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분단은 단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불행이기도 하다. 휴전선은 한반도만이 아니라 온 세계를 적대적 두 진영으로 나누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이 노래하는 사랑이 인간의 가장 내밀한 욕구인 동시에 보편적인 화해와 평화를 실현하는 원리이기도 하다면, 그들은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에 대해 다른 어떤 비극적 현실로부터 받은 상처보다 더 크게 상처받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노래가 과연 세월이 가도 누그러지기는커녕 점점 더 증폭되어가는 남북한의 적대적 대치구도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 없는 물음 앞에서 절망할 것이다.

예술의 힘은 가르치고 훈계하는 데 있지 않고, 질문하는 데 있다. 물음을 멈추는 곳이야말로 예술이 진부해지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세속적으로 성공한 예술가가 삶과 현실에 대한 물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삶에 대한 진지하고도 치열한 물음은 오직 현실의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는 정신에게만 허락되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방탄소년단의 군 입대는 그들의 예술을 위해서는 아마도 다행일 것이다. 왜냐하면 필경 그들도 군 생활을 통해 내가 그랬듯이 남북분단의 비극 앞에서 전율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그리고 그 비극적 현실 속에서 예술의 힘과 무능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게 될 것이므로. 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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