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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이 된 화가 '의재 허백련'를 만나다

입력 2021.09.15. 12:04

무등산 하면 생각나는 것은 뭐일까요?

많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인구 100만 이상이 사는 대도시에서 10km 이내 있는 유일한 1000m 급 산이고 8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주상절리인 입석대와 서석대, 광석대가 있는 산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오늘의 무등산이 있기까지 무등산에 살며 차와 그림으로 여생을 보낸 의재 허백련 선생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무등산에 있는 의재 허백련 선생의 유적을 찾아 나선 산책길을 소개하려는데요, 기본적으로 증심사지구에서 의재미술관까지는 걸어와야 합니다. 물론 증심사까지 길도 좋지만, 사람이 많이 왕래해 오늘은 딱 꼬집어 의재의 유적을 찾아가는 길도 호젓하게 걸을 수 있어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의재미술관 앞에는 의재 허백련 문화유적 안내도가 있어요.

1~3번은 의재미술관이고 10~12번은 증심사와 차밭인데, 현재 의재미술관은 공사로 매우 어지럽습니다.

공사한 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요, 의재미술관은 2020년부터 리모델링으로 장기 휴관 중입니다.

의재미술관은 20세기 남종문인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1891~1977) 선생의 화업과 정신을 계승하고자 의재문화재단을 설립해 세운 미술관으로 선생의 작품을 상설전시하며 조사와 연구, 교육을 병행하는 한국화 본산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언제 재개관할지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의재 허백련 문화유적은 미술관 앞 계곡의 나무다리를 건너면서 시작합니다.

의재미술관에서 문화유적도 함께 관리하는 것 같은데요, 현재 관리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아 아마도 미술관 리모델링 공사와 함께 진행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도 언제인지 출입문을 설치했는데요, 다리 일부분 바닥이 파손되었었지만, 말끔하게 복구했군요.

문 한쪽이 열려 있어 들어가 봅니다.

춘설헌은 너무나 유명한 곳이고, 의재 묘소와 춘설차 실습장 그리고 관풍대로 이어지는데요, 오면서 먼저 관풍대를 봤는데, 관풍대에서 춘설차 실습장으로 가는 길목이 끊겼더군요. 그래서 거기는 조금 있다가 내려가면서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의재 묘소와 춘설헌이 가장 보고 싶은 곳이죠.

문향정은 의재 허백련 선생이 농업고등학교 실습용 축사였던 것을 춘설차 보급 장소로 활용하고자 개축해 오랫동안 춘설차 문화관 등으로 운영했는데요, 현재는 보시다시피 문을 닫은지 오래되었네요. 그동안 몇 번 와 차도 마시고 했지만, 쓸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깝네요.

아무래도 차량이 들어올 수 없어 접근성이 좋지 않기 때문에 문향정의 활용도를 놓고 고민해 봐야겠네요.

자 이제 의재 묘소와 춘설헌으로 갑니다.

먼저 좌측으로 난 돌계단을 따라 의재 묘소에 다녀온 뒤 다시 내려와 오른쪽 춘설헌으로 갈 예정인데요, 유기견 두 마리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

유기견을 포획하려고 다리 근처에 포획틀이 있는데 잡히지 않나 봅니다. 저를 보고 왜 내 영역에 들어왔냐고 짓길래 나뭇가지를 들고 가니 꼬랑지 내리고 후다닥 도망가는 것이 겁은 많네요.

숲길을 쭉 걸어 올라가면 의재 묘소가 나옵니다.

문향정 갈림길에서 120m 정도 되는데요, 거리도 짧고 산기슭으로 차밭도 있어 걷기에도 좋지만, 혼자 가기에는 약간 무섬증도 생기니 꼭 둘 이상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의재 허백련 묘라고 쓰인 비석이 있어요.

선생은 조금 있다가 갈 춘설헌에서 기거하며 많은 작품을 완성했는데요, 화가로서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농촌 중흥을 위해 농업기술학교를 설립해 교육에 힘썼고 애천(愛天) 애토(愛土) 애인(愛人)이라는 삼애사상(三愛思想)을 제창한 분입니다.

선생의 묘소는 북서방향을 보고 있는데요, 그쪽이 바로 광주 시내 방향입니다.

무등산 기슭에 차밭을 재배해 이름을 '춘설차'로 짓고 "우리 민족이 차를 마심으로써 정신을 맑게 하고, 맑은 정신으로 판단하여 실천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라며 차 문화 보급에 앞장섰는데요, 지금도 후손들이 4대째 삼애다원을 이어가며 광주시 전통식품 1호 명품 춘설차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의재 묘소에서 내려와 춘설헌에 갑니다.

선생이 무등산에서 재배한 녹차에 붙인 상호가 춘설차인데요, 선생이 기거하던 가옥도 춘설헌입니다.

문향정 갈림길에서 춘설헌까지는 60m 정도밖에 안되지만, 무등산에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볼 정도로 힐링 산책로입니다.

길도 평지여서 힘들이지 않게 다녀올 수 있는데요, 언제 가도 좋은 길이네요.

춘설헌은 광주시 기념물 제5호입니다.

1956년 건립해 의재 선생이 타계한 1977년까지 약 20여 년간 선생이 기거한 집인데요, 선생이 1938년부터 정착해 살던 집이 낡아 벽돌로 새로 지은 것입니다. 훗날 제자들이 늘어나자 별채를 이어붙여 현재처럼 두동이 되었습니다.

춘설헌은 의재 선생이 생전에 국내외 많은 인사들과 교유할 때 춘설헌에서 차를 대접했다는데요,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부인과 함께 1974년 3월 의재를 만나려고 춘설헌을 찾았고 1975년에는 독일의 여류작가로 <생의 한가운데> 저자 루이제 린저(1911~2002)는 북한 방문기로 유명한 분인데, 한국 첫 방문에서 광주를 찾아 선생을 만났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실내들 들여다보니 사람이 기거한 흔적도 있습니다.

선생이 기거할 때부터 많은 손님들이 찾은 춘설헌이기에 기본적인 숙소 역할도 했을 겁니다.

일제강점기 고려공산당 창단 멤버인 지운 김철수가 은둔했으며, 다석 유영모, 씨알 함석헌, 효당 스님, 고은 시인 등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춘설헌에서 머물다 가는 것을 영광으로 삼았죠.

다른 방을 보니 이부자리가 곱게 펴 있어 방금까지도 사람이 산듯한 풍경입니다.

건축한지 반세기도 넘었는데 여전히 튼튼해 보입니다.

춘설헌 역시 의재미술관에서 관리하고 있는데요, 현재 미술관이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춘설헌의 활용방안도 아마 리모델링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선생의 채취가 남긴 춘설헌에서 하루 묵는 것 자체가 가문의 영광일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 활용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춘설헌에서 나와 춘설차 체험장과 관풍대를 보며 내려갑니다.

계곡 건너 춘설차 체험장은 원래 춘설차 공장이었지만, 화재로 소실돼 원형대로 복원했다는데요, 무등산에서 수확한 차를 덖는 제다를 하던 곳이지만, 역시 문이 닫혀 있군요.

춘설차 체험장에서 쭉 내려가면 산기슭 위로 관풍대가 있습니다.

의재 선생이 지인들과 학생들을 위해 만든 차실(茶室)이었지만, 다례 실습장으로 운영하다 역시 현재는 문이 굳게 닫혀있네요.

관풍대에서 춘설헌으로 가는 길도 다리가 유실돼 건널 수 없네요.

의재 선생이 남긴 문화유산이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재탄생해 많은 사람이 의재 선행의 흔적을 따라 그 길을 걸었으면 좋겠네요.

몇 해 전 겨울 새인봉에 올랐다가 찍은 무등산 춘설 차밭입니다.

증심사에서 올라갈 수 있지만, 경사면이어서 이렇게 멀리서 보니 확연하게 보이군요.

선생은 거의 평생을 무등산에서 살며 무등산의 계곡물로 산수화를 그리고 무등산에서 재배한 차를 마셨으며 무등산의 공기를 마시며 살았답니다. 선생의 삼애정신이 빛날 수 있도록 의재의 문화유적이 잘 관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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